학생기자단
한방문화가 피어난 도시, 대구 약령시의 축제 - 360년의 역사를 지닌 약전골목의 계승
관리자 2018.05.02 571

한방문화가 피어난 도시, 대구 약령시의 축제



- 360년의 역사를 지닌 약전골목의 계승





손영훈 (영남대학교 산림자원 및 조경학과)





‘한방문화가 피어난 길, 대구 약령시로 오시오!’ 2018 한방문화축제의 슬로건이다. 대구광역시와 대구광역시 중구가 주최하고, (사)약령시보존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한방문화축제는 다가오는 5월3일부터 5월7일까지이며 대구광역시 중구 약령시 일원에서 개최 될 예정이다.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는 1658년(효종9년) 무렵부터 해마다 열리는 행사로 전국의 한약인과 전체 지역민이 어울려 약재를 사고 팔며 인심과 문물을 전하던 축제였다. 이러한 약령시장은 강점기의 역사를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왔으며 1978년에 현대적으로 승화시켜 제1회 달구벌 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매년 5월 초 전통 한의약 축제로 대구 약전골목 일원에서 개최되어 오고 있다.









<2018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 홍보포스터>

출처: http://www.herbfestival.org/kor/





지난 360여년간 만들어지고 다시 잊혀지기를 반복해오며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한약향 가득한 약전골목으로 떠나보자.





대구 지하철 반월당역 인근 남성로 약630m에 걸쳐 자리잡고 있는 대구약령시는 조선 효종 9년(1658)부터 대구부성 안의 객사(客舍) 주변에서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한약재를 유통시켰던 전통 한약시장이다. 수백 년을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전역은 물론 일본과 중국, 만주,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 한약재를 공급해왔다. 일제 강점기 때는 민족정기 구현과 국권회복 운동에 관여하기도 했다. 대구약령시가 번성했던 당시 유통되는 약재는 먼저 궁중에서 구입해 갔고, 전국의 약재상과 한약방에서 필요한 1년치 분을 한꺼번에 사갔을 정도로 대구약령시의 규모나 거래물량은 대단했다.







<약령문(藥令門)>

약전골목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다보면 약령문. 그 곳으로 들어가면 실내 한방족욕체험, 한약재 비누만들기,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있는 한의약박물관이 있다.







<약령공원>

약령문 안쪽에 위치한 약령공원에는 약탕기분수 지압보도와 혈액순환에 좋은 한약재를 이용한 야외 한방족욕체험장이 있다.





일제강점기의 시작으로 1년에 두 번 열리던 약령시가 한 번으로 줄고 여러 규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결국 약령시는 일제에 의해 폐지되었다. 해방 이후 다시 열렸으나, 옛날과 같은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며 다시 한 번 그 맥이 끊기고 말았다.









<1930년대 대구 약령시의 한약재 도매상>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상인들은 일제의 핍박으로 하루 아침에 무너져 버린 약령시를 되살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1978년 제 1회 대구약령시축제가 시작되었고 그 명성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자랑이자 긍지인 대구약령시는 민족의약 발전과 국민보건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과 한방문화 전승 및 교환경제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한 약전골목은 현대에 서양의 양약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더불어 약전골목 인근에 대형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임대료가 올라 기존 한약방의 상인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약령시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경쟁력이 뒤쳐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약령시에서는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약전골목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36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약전골목. 이제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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