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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학회 학생기자단 소식지 NO.11 : 조선왕릉 헌인릉 답사기
관리자 2019.12.23 360

조선왕릉 헌인릉 답사기

조선초기와 후기의 왕릉의 모습을 비교해보다





(사)한국경관학회 학생기자단 8기



신구대학교 함은경





조선은 1392년 왕조를 개창한 이래에 1910년까지 518년간 27대의 왕과 왕비가 존재했다. 한 왕조가 500년 이상 지속되었고 재위한 모든 왕과 왕비의 능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조선왕릉이 유일하다.



조선왕릉은 총 42개의 왕릉이 있다. 입지를 정할 때는 자연지형을 고려하여 터를 선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입지를 선정하는 두가지 요소 중 첫 번째로 풍수사상에 기초를 두었다. 도읍지인 한양 주변의 한강을 중심으로 한강 북쪽의 산줄기인 하북정맥과 남쪽의 지형인 한남정맥을 중심으로 택지하였다. 두 번째로는 도성 중심으로 10리(약 4km) 밖 100리(약 40km) 안에 조성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국도인 한양의 경복궁을 중심으로 관리와 참배가 용이하도록 근접성을 고려한 것이다.





헌릉의 사진 인릉의 사진



ㅣ헌인릉 소개

42개의 조선왕릉 중 헌인릉은 조선 제 3대 임금인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 제 23대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능으로 합쳐진 곳이다. 위치는 서울시 서초구 헌인릉길 36-10에 위치해 있으며 사적 제 194호로 지정되었다. 경복궁과 헌인릉의 거리는 15.2km로 도성과 가까운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한남정맥의 속리산에서 올라온 정맥이 대모산을 주산으로 대모산의 줄기에서 뻗어나간 갈래에서 산세가 평지와 만나는 곳에서 조영되었다. 헌인릉은 서울시에서 생태경관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어 우거진 숲속을 길을 걷다 보면 인릉을 먼저 보고 다음으로 헌릉을 볼 수 있다. 원래 각각의 진입구가 있었으나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릉 쪽으로 진입 동선을 조성하였다. 주목할 점으로는 400년 이상 시간차를 두고 조성된 왕릉인지라 조선 초기와 후기의 왕릉 모습을 한 곳에서 비교가 가능하다.





ㅣ조선왕릉의 구조

조선왕릉의 구조는 크게 진입공간, 신과 인간이 같이 머무르는 제향 공간과 신의 영역인 능침공간으로 구분하였다. 진입공간에는 외홍살문, 재실, 연지, 화소, 금천교 등이 있으며 구불거림으로써 능역이 쉽게 보이지 않아 엄숙함과 신성함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다. 제향 공간은 홍살문, 제례로, 수복방, 비각, 정자각, 어정 등이 있으며 산자가 죽은자를 맞이하여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정자각 주위에는 축문을 태우는 예감, 능을 지키고 제수를 준비하는 수복방과 수라간, 비각 등이 있다. 능침공간에는 봉분, 양석과 호석, 망주석 장명등, 문무석인상, 마석, 곡창, 화계 등이 있다. 주로 가로 공간으로 장대석을 설치하여 3단계(상계, 중계, 하계)로 나누었다.





ㅣ헌릉과 인릉의 차이

헌릉과 인릉의 차이를 공간마다 나누어 볼 수 있다. 제향공간에서의 차이는 제례를 지낸 후 시신을 태우는 곳으로 헌릉은 조선전기의 불교 화장 문화 영향으로 인해 축문을 불태우는 소전대가 그 기능을 하였으나, 인릉은 후에 유교의 영향을 받아 지방을 태워 묻는 예감으로 바뀌었다. 또한 헌릉은 신도비를 묘의 동남쪽에 설치하였지만 인릉은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거나 신원을 밝히기 위한 글을 적은 비문을 설치하였다. 능침공간에서의 차이는 가장 크게 능의 형태이다. 헌릉은 각각의 봉분을 한 언덕에 나란히 조성한 쌍릉이지만 인릉은 부부를 한무덤에 묻은 합장릉 형태이다. 또한 헌릉에는 병풍석이 존재하지만 인릉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에는 병풍석 없이 난간만으로 능상을 보호한 특징이 있다. 헌릉의 석물의 개수는 총 34개지만 인릉의 석물의 개수는 17개로 석물의 개수가 줄어든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ㅣ조선왕릉의 가치

최근 들어 문화 가치에 대한 관심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재인식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조선왕릉은 세계유산으로 조형예술적 가치, 풍수이론에 대한 고유한 해석, 조선왕릉과 관련된 기록문화, 600년을 이어온 왕실의 제례 등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조선왕릉이 오랜 기간 보존되어지면서 도시화 과정에서 많은 왜곡과 훼손이 발생되었는데 능역 경관의 역사성, 진정성 등을 회복해 문화적인 가치를 높여야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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