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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학회 학생기자단 소식지 NO.30 : 바르셀로나의 도시경관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관리자 2021.10.15 384





바르셀로나의 도시경관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오늘날의 바르셀로나가 만들어지기까지









()한국경관학회 학생기자단 10



서울시립대학교 함은경







[강의 표지 사진] [바르셀로나 슈페리야 계획]





출처 https://ajuntament.barcelona.cat/









지난 914일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경관디자인론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키트윈스 이병기 대표의 ‘Barcelona Until Today’ 오늘날의 바르셀로나 도시경관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특강이 열렸다. 이번 특강은 약 10년간 스페인에 거주하며 가우디의 모교로 알려진 바르셀로나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이병기 대표가 진행하였다. 강연에 앞서 이 대표는 바르셀로나는 굉장히 특별하다. 짧은 기간, 이렇게 넓은 영역에 단일한 도시 구조가 실현된 사례로는 거의 유례없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의 성장, 과정 중 겪는 성장통,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바르셀로나 도시의 역사



바르셀로나 도시의 역사는 크게 4가닥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가닥은 바르셀로나 로마나로 기원후 4세기(300년경) 로마도시의 성벽이다.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성벽 탑의 높이는 18m 두께는 2m였다. 성벽 위로 전쟁에 필요한 물자가 운송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벽의 안쪽은 물자를 운송 받기 위해 상당 부분 비어 있었다. 성벽의 안쪽에는 왕궁, 성당의 뜰, 시장과 같이 거대한 시설이 차지하였고 이때 나눠진 큰 필지는 오늘날까지 연속되고 있다. 즉 로마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바깥쪽은 작은 시설물들이 주를 이루고 성벽 안쪽은 큰 시설물들로 구성되었다.





두 번째 가닥은 바르셀로나 메디에발로 중세도시를 의미한다. 기존 로마 도시를 기준으로 내성과 외성 두 개의 성이 지어졌다. 서쪽 부분인 외성은 논, 밭으로 이루어진 부분이고 동쪽 부분인 내성은 아주 빽빽하게 사람들이 거주했던 영역이다. 외성 부분이었던 곳은 논, 밭으로 이루어졌던 곳이기 때문에 병원, 대학과 같은 거대한 시설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도 구도심이라고 하는 성벽 안의 필지를 보면 가운데 성벽의 왼쪽과 오른쪽의 도시 구조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성벽은 이후 도시가 확장되면서 일부를 제외하고 부서지게 되었고 이 넓은 공간에 지하철과 람블라스 거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세 번째 가닥은 바르셀로나 모데르나로 근대도시를 의미한다. 중세시대의 성곽이 부서지면서 1859년 일데폰스 세르다가 바르셀로나의 에이샴플라(확장 개조 계획안)를 제안하였다. 계획안을 보면 모서리가 깎인 수많은 정사각형의 블록으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블록 한 변의 길이는 113.3m, 도로가 20m 폭이다. 도로의 중심선을 기준으로 한 모듈은 133.3m4줄로 통행하는 마차 이동을 감안한 도로 체계로 계획되었다. 간단한 것처럼 들리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도시의 경사를 평지처럼 모두 메워야 하는 등, 인간의 기술로 자연이 만든 여러 경계와 제한을 넘어설 수 있다는 원대한 의지를 드러낸 계획안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가닥은 바르셀로나 콘템포라네아로 현대도시를 의미한다. 2015부터 2020년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수페리야(Superilla) 계획안이다. Super(거대하다)와 카탈루냐어 Illa()이 합쳐진 말로 거대한 섬을 만들겠다는 의미이다. 거대한 섬이란 에이샴플라 블록 여러 개를 묶어서 더 큰 블록을 만들고 그 사이 도로를 공원녹지화하여 공공에게 돌려주겠다는 계획이다.










로마시대 성벽의 현재



로마시대 성벽은 바르셀로나 도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세시대 도시가 확장되면서 로마시대 성벽에서 나오는 출입구의 도로가 연장되었고 이는 중세시대의 성곽 산안토니 문으로 연결된다. 성벽에서부터 확장되었기 때문에 도시의 중요한 길들은 모두 로마 성벽으로 이어지고 주위로 주요시설들이 엮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800년대의 도면을 보면 특이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 모두 따개비처럼 성벽에 기대어 개발된 필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후 성벽이 더는 방어의 역할을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 성벽에 붙여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로마성곽의 북문을 기준으로 보면 시계의 12시에서 5시 방향에 해당하는 구역에 있는 대성당, 왕이 살던 궁전 등 공공의 영역 부분은 성벽이 복원되어 역사적인 로마 성벽을 감상할 수 있고 나머지 부분은 집이 지어져 가려지게 되었다.










에이샴플라 계획안의 등장



콜레라, 스페인 독감과 같은 질병의 등장은 도시와 건축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페인의 근대 초기 대량생산이 발달하면서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공장 옆에서 모여서 거주하였다. 30평 정도 크기의 집에 30명의 사람이 같이 생활하였으며 이는 위생과 질병의 취약한 거주 환경이었다. 전염병의 유행으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고 이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도시는 상한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는 외과수술과 같은 치료적 개입을 통해서 변화되어야 했고 전염병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근대 도시는 생존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일데폰스 세르다의 에이샴플라 계획안이 탄생하게 되었다. 기존에 있었던 마을들은 유지한 채 그 외에 모든 지역을 133.3m의 정사각형으로 채우는 확장 계획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도로 폭은 20m, 건물의 폭은 24m로 제한하였다. 엄청난 밀도를 가지고 있는 구도심의 도시 구조와 비교했을 때 에이샴플라 계획은 가운데 부분은 비워지고 앞, 뒤로 환기가 되는 쾌적한 구조이다.










현재 바르셀로나 도시 구조의 문제점



에이샴플라는 건물 가운데 비워진 파티오 공간은 공공의 녹지 공간으로 사용될 것으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은 사유화되어 공공의 영역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시민들을 위한 외부 공간은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알데폰스 세르다 시대에는 없었던 자동차가 개발되면서 20m4차선 도로 옆에 있는 건물에 거주하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소음과 공해로부터 고통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m 폭의 도로와 인도의 패턴을 통일하고 1차선은 녹색 영역으로 탈바꿈시키는 등의 택티컬 어바니즘이란 이름으로 개발된 전술들을 적용하기 위한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이는 현재 바르셀로나 도시의 큰 구조는 바꾸지 않으면서 공공에게 녹색 공간과 외부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본 강의는 바르셀로나에 오랫동안 거주했던 이병기 대표의 경험담을 토대로 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담은 강의였다. 바르셀로나의 도시경관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자세한 과정들을 이해하고 현재의 도시 구조의 문제점들과 앞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방안들을 들으며 도시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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